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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장

전통 장 담그기의 기원은?

신라 시대 장 담그기의 시작과 문화적 의미

신라 시대는 한반도의 전통 장류 문화가 본격적으로 자리 잡기 시작한 시기로 평가된다. 이 시기의 장 담그기는 단순한 음식 보존 기술을 넘어선 사회적, 종교적, 문화적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신라 사람들은 장을 단순히 조미료나 반찬으로 사용한 것이 아니라, 조상 숭배와 신앙 의식 속에서도 활용했다. 예를 들어, 제사 때 바쳐지는 음식물 중 된장과 간장이 포함된 경우도 많았다. 이는 장이 단순한 식재료를 넘어서 신성한 매개물로 인식되었음을 보여준다.

신라 시대에는 특히 불교의 영향으로 인해 채식 중심의 식문화가 자리 잡았다. 고기를 섭취하지 않는 대신, 장류는 단백질과 감칠맛을 제공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 시기 장 담그기는 가족 단위보다는 주로 사찰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사찰에서는 승려들이 장을 담그는 일을 수행했으며, 장류 제조법 역시 사찰 내부에서 체계적으로 전수되었다. 당시 사용된 장독대는 토기 재질이 일반적이었고, 토양과 기후에 맞춘 발효 환경 조절 기술이 이미 발전하고 있었다.

신라 시대의 장 담그기는 철저히 자연 발효에 의존했기 때문에 계절의 흐름에 민감했다. 대개 겨울이 시작되기 전인 음력 10월에서 11월 사이에 장을 담갔다. 이렇게 담근 장은 겨울을 지나며 서서히 발효되었고, 이듬해 봄부터 여름까지 맛이 무르익어 사용되었다. 이 시기의 장은 현대와 비교하면 상당히 짠 편이었으며, 장기 보관을 위한 보존성을 최우선으로 삼았다. 이러한 전통은 오늘날 한국 장류 문화의 뿌리가 되었다.

 


고려 시대 장 담그기의 기술적 진보와 궁중 요리의 발전

고려 시대로 접어들면서 장 담그기는 한 단계 진보하게 된다. 불교가 여전히 국교로 유지되었으나, 귀족 중심의 문화가 발달하면서 장류의 품질과 다양성이 크게 향상되었다. 고려의 궁중에서는 장이 단순한 보존 식품이 아니라 고급 요리 재료로 활용되기 시작했다. 귀족들은 장의 향미와 깊이를 중시하여, 된장, 간장, 고추장이 각각 다른 제조법과 숙성 기간을 갖도록 발전시켰다.

고려 시대에는 특히 ‘숙성 기간’과 ‘재료의 배합 비율’이 장의 품질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로 부상했다. 이 시기부터는 메주 제조 방법이 체계화되었다. 콩을 삶고 으깬 뒤 일정한 크기로 빚어 건조하고, 발효균이 자연스럽게 서식할 수 있도록 짚으로 엮어 메주를 띄우는 기술이 보편화되었다. 이 과정에서 사용하는 물의 성질, 소금의 농도, 발효 공간의 온습도 등이 장맛에 큰 영향을 미쳤다.

고려 시대 장 담그기는 특히 몽골과의 교류를 통해 새로운 조미료 문화와 결합하기도 했다. 몽골의 장류나 발효 문화가 일부 전래하여 고려의 장 제조법에도 다소간 영향을 미친 것으로 학자들은 추정한다. 또한, 장 담그기는 이 시기부터 점차 일반 농가에서도 자급자족의 중요한 일상으로 자리 잡았다. 가문마다 고유의 장 담그기 비법이 전승되면서 지역마다 특색 있는 장맛이 형성되었다. 이는 한국 장류의 지역적 다양성이 태동하는 시기라 할 수 있다.

 

 


조선 시대 장 담그기의 황금기와 과학적 체계화

조선 시대에 들어서면서 전통 장 담그기는 그야말로 황금기를 맞이한다. 유교적 가부장제 문화가 확산하며 가정 내 장 담그기가 여성의 주요 역할로 자리 잡았다. 조선의 사대부 가문에서는 해마다 장 담그기 행사가 중요한 연례행사로 치러졌고, 이는 가문의 번영과 식량 안정을 상징했다. 조선의 실학자들은 장 담그기의 원리와 과학적 과정을 체계적으로 기록하여 후세에 전했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 서유구는 그의 저서 『임원경제지』에서 장 담그기에 관한 상세한 기술을 남겼다. 서유구는 메주의 발효 조건, 염도 조절, 온도 관리 등에 대해 구체적인 지침을 제시하였다. 이러한 과학적 접근은 조선 장 담그기의 품질을 획기적으로 향상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이 시기에는 장독대 배치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장독대는 남향으로 배치하여 햇빛을 충분히 받게 하고, 빗물이 고이지 않도록 장독대 아래에는 조약돌을 깔았다.

조선 시대 장 담그기는 국가적인 차원에서도 중요하게 다루어졌다. 왕실에서는 전용 장독대를 운영하며 최고의 장을 생산했다. 특히 경복궁과 창덕궁 내에는 별도의 장 담그기 시설이 존재했다. 또한, 장은 조공품이나 외교 선물로도 사용되며, 조선의 발효식품 기술이 주변 국가들에도 알려지게 되었다. 이처럼 조선 시대는 장 담그기가 단순한 가내 수공업을 넘어 국가적 산업과 문화의 상징으로 자리 잡은 시기라 할 수 있다.

 

 


전통 장 담그기의 역사적 계승과 현대적 가치

신라, 고려, 조선 시대를 거쳐 발전해 온 전통 장 담그기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한국 식문화의 중심에 있다. 현대에는 산업화와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공장에서 대량 생산되는 장류 제품이 주류를 이루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가정에서는 전통 방식으로 장을 담그는 문화가 유지되고 있다. 이러한 전통 장 담그기는 단순한 음식 제조를 넘어 세대를 잇는 가족 문화로 기능하고 있다.

현대 한국 사회에서 전통 장 담그기는 ‘슬로우 푸드 운동’과도 맞물려 재조명되고 있다.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인공 첨가물 없이 자연 발효로 만든 장이 인기를 끌고 있으며, 일부 농촌 마을에서는 장 담그기 체험 행사를 운영하기도 한다. 특히 발효식품의 장점으로 알려진 장내 미생물 균형 유지, 소화 기능 향상, 면역력 강화 등 건강 효과는 과학적으로도 입증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전통 장 담그기는 단순한 옛 문화가 아니라, 현대인의 건강을 지키는 중요한 자산으로 평가받는다.

또한, 전통 장 담그기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를 추진하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이는 장 담그기가 단순히 한국의 음식문화에 그치지 않고, 세계적인 발효식품 문화의 한 축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장 담그기의 기원과 발전사를 돌아볼 때, 한국인의 삶 속에 깊숙이 뿌리내린 이 전통이 앞으로도 더욱 소중히 보존되어야 할 문화유산임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