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장 담그기 시작 – 메주 만들기부터 장 담그기 준비까지
2023년 11월, 나는 생애 처음으로 ‘진짜 된장과 간장을 직접 만들어보겠다’는 마음으로 전통 장 담그기를 시작했다. 장을 사 먹는 시대에 직접 장을 담그겠다는 생각은 무모하게 느껴졌지만, 건강한 식재료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발효음식에 관해 공부하면서 자연스럽게 용기가 생겼다. 첫 단계는 바로 메주 만들기였다.
콩을 고르고 삶는 과정부터 신중하게 접근했다. 무농약 백태를 10시간 이상 불려 부드럽게 삶았고, 곱게 빻지 않고 으깨는 방식으로 식감을 살렸다. 콩을 식힌 뒤, 손으로 둥글납작하게 빚은 메줏덩어리를 볏짚으로 엮어 고정했고, 통풍이 잘되는 창고 천장에 매달아 40일간 말렸다. 이 과정에서 메주에는 자연의 미생물이 붙어 발효가 시작되었고, 표면에 하얗고 노란 곰팡이가 생기며 특유의 냄새가 퍼졌다.
건조와 발효가 동시에 진행된 이 시점이 가장 어렵고 긴장되는 과정이었다. 냄새가 심하지는 않을까, 곰팡이가 잘못되지는 않을까 여러 번 확인했다. 메주를 만지는 손이 얼얼하고, 처음 맡아보는 발효 냄새에 낯설었지만, 내 손으로 무언가를 ‘기다리는’ 시간의 가치를 배우는 중요한 시기였다. 이때부터 나는 매일 메주 상태를 기록하며 ‘된장 발효 일지’를 쓰기 시작했다.
장 담그는 날의 설렘 – 항아리, 소금, 물까지 전통 그대로
2024년 1월, 설 연휴 직전, 드디어 메주를 항아리에 넣고 장을 담그는 날이 왔다. 예로부터 정월에 장을 담그는 건 집안의 복과 건강을 담는 일이라 여겨졌기에, 그 전통을 따르고 싶었다. 나는 장독대 대신 베란다 한켠을 비워 항아리를 놓았고, 메주를 깨끗이 털어 항아리에 차곡차곡 쌓았다. 메주 사이에는 굵은 천일염을 한 층씩 뿌렸고, 마지막에는 삶은 소금물(염도 약 18%)을 붓고, 숯과 고추를 띄워 위생을 보완했다.
항아리 위에는 면보를 덮고 노끈으로 묶은 뒤, 다시 뚜껑을 덮었다. 그렇게 ‘장항아리’는 햇볕이 잘 들고 공기 흐름이 있는 자리에서 100일을 보내게 되었다. 이 시기부터는 날씨, 온도, 습도까지 기록하는 발효 관찰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평균 기온, 습도, 햇빛 시간, 우천 여부까지 체크했고, 항아리 안에서 생기는 거품이나 냄새의 변화를 꼼꼼히 노트에 기록했다.
한 달쯤 지나니 메주가 물에 적셔지며 특유의 깊은 냄새가 올라오기 시작했고, 간장 빛을 띠는 맑은 액체가 표면에 보였다. 3개월째 되는 날, 간장을 떠냈다. 위쪽의 맑은 액을 채로 걸러 간장으로 따로 보관했고, 나머지 메주는 으깨어 된장을 만들 준비를 했다. 이 시점에서 나는 ‘장 담그기’는 음식이 아니라 시간이 빚는 예술이라는 걸 체감했다. 기다림, 기록, 관찰이 없으면 성공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여름철 발효 관리의 긴장 – 장 안에서 벌어지는 자연의 움직임을 기록하다
2024년 5월이 되자, 날씨가 눈에 띄게 더워지기 시작했다. 이 시점부터 나는 장 담그기 발효 과정 중 가장 긴장되는 여름철 구간에 돌입했다. 발효는 온도가 올라가면 더 활발해지지만, 동시에 곰팡이, 날파리, 산패 같은 문제도 함께 커지는 시기다. 그래서 하루도 거르지 않고 아침 7시마다 항아리 상태를 점검하는 루틴을 만들었다. 내 손으로 직접 관리하는 발효는 생명체를 돌보는 것 같은 책임감을 요구했다.
매일 항아리 뚜껑을 열면 느껴지는 온도, 냄새, 습기는 전날과 미세하게 달랐다. 특히 6월 들어 날씨가 본격적으로 더워지자 항아리 표면에 흰곰팡이가 생기기 시작했고, 작은 날벌레들이 항아리 주변을 날았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나는 항아리 뚜껑 위에 두 겹의 천 보자기와 실리콘 뚜껑, 그리고 그 위에 다시 뚜껑 덮개를 올리는 3중 구조로 보호했다. 또 항아리 주변의 온도를 낮추기 위해, 시원한 얼음팩을 낮에만 항아리 주변에 두고, 저녁에는 걷어내는 방식으로 하루 두 번씩 관리했다.
곰팡이는 된장 위 표면에만 얇게 생겼기 때문에, 면봉에 식초를 묻혀 곰팡이 부위를 조심스럽게 닦아내는 방식으로 제거했다. 이때 중요한 것은 장 안의 깊은 층을 건드리지 않고, 표면만 관리하는 것이었다. 또 위생을 위해 사용한 도구는 매일 뜨거운 물과 소독제를 활용해 살균했다. 여름에는 잡내가 나기 쉽기 때문에 항아리 근처에 제습제를 두고, 바닥에는 숯을 넣은 바구니를 배치해 냄새와 습도 조절까지 병행했다.
이 무렵 된장은 색이 진해졌고, 촉감이 더욱 묵직하고 농도 있게 변해 있었다. 간장은 표면에서 맑게 분리되어 나왔고, 유리병에 따라낸 간장은 짙은 갈색을 띠며 시중 제품보다 훨씬 부드럽고 깊은 맛을 냈다. 이때부터 장의 맛과 향이 눈에 띄게 완성 단계로 향하고 있음을 느꼈다. 나는 매일 된장의 상태, 간장의 향, 곰팡이 유무, 온도, 습도 등을 사진과 함께 기록했으며, 장 안의 변화를 하나의 ‘자연 실험’처럼 받아들이고 분석했다.
결국 여름철의 발효 관리는 내가 장을 만들며 가장 다양한 지식과 실전 감각을 쌓을 수 있었던 시기였다. 날마다 달라지는 환경 조건을 읽고 대응해야 했기 때문에, 이 기간의 기록은 장 담그기 실전 노하우의 핵심 자산이 되었다. 여름을 잘 넘기고 나면 발효는 안정기에 접어들며, 그때부터는 장이 스스로 익어가는 과정을 느긋하게 지켜볼 수 있게 된다. 여름은 힘들었지만, 가장 배우는 게 많았던 고마운 시기였다.
1년의 기록, 완성된 장 – 손으로 만든 장이 주는 깊은 감동
2024년 11월, 첫 메주를 만들었던 시점으로부터 정확히 1년이 흘렀다. 가을바람이 선선하게 불던 그날, 나는 항아리를 마지막으로 열었다. 손에 장갑을 끼고 된장을 깊이 떠보았다. 장 속 깊은 곳은 더 진하고 농축된 색을 띠고 있었고, 냄새는 짠 향을 넘어서 발효 특유의 고소하고 복합적인 풍미로 가득했다.
숟가락으로 떠낸 된장은 점도가 높았고, 뻑뻑하게 퍼지면서도 질감은 곱고 부드러웠다. 입에 조금 떠 넣어보니 짠맛과 감칠맛, 콩의 고소한 맛이 어우러져 시중 제품에선 느낄 수 없는 깊고 순한 맛이 났다. 이 장은 1년 동안 내가 매일 보고, 만지고, 기록한 결과물이었다. 나는 된장을 유리병에 소분했고, 각 병에 날짜와 ‘수제 재래식 된장’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몇몇 병에는 라벨 대신 손 글씨 메모를 직접 적어 감성까지 담았다.
완성된 장은 단순히 ‘먹을거리’가 아니라 시간이 농축된 결과물이었다. 나는 이 된장과 간장을 가족, 친척, 가까운 친구들에게 선물했다. 선물용으로 포장할 때도 전통 한지로 감싸고, 짚 끈이나 천 보자기를 사용해 전통의 멋을 살렸다. 받은 사람들 대부분은 “이걸 네가 만들었다고?”, “향이 정말 다르다”, “된장국 맛이 훨씬 깊어졌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 순간, 내가 1년 동안 들인 정성과 노력은 확실히 보상받았다고 느꼈다.
나는 이후 이 모든 과정을 기록한 ‘장 담그기 발효 일지’를 블로그와 SNS에 공유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나만의 기억을 남기기 위해 정리했지만, 많은 사람이 관심을 보이며 직접 장을 담그는 것에 도전해 보고 싶다는 메시지를 보내오기 시작했다. 내 경험이 누군가의 시작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은 큰 보람이 되었고, 이후 나는 매년 한 번씩 장을 담그고, 이를 기록으로 남기기로 마음먹었다.
장 담그기 1년은 단지 하나의 식품을 완성한 시간이 아니었다. 그것은 내 삶의 속도를 늦추고, 기다리는 법을 배우며, 자연과 교감했던 시간이었다. 처음엔 그저 건강한 음식을 만들고 싶었을 뿐이지만, 발효라는 긴 시간을 통해 나는 기다림의 미학, 실패와 회복의 경험, 그리고 매일을 관찰하는 습관을 배웠다. 내가 만든 장은 그 모든 시간의 집합체였다.
이제 나는 마트에서 파는 장이 아닌, 내 손으로 만든 된장과 간장을 요리에 사용하며 삶의 질을 높이고 있다. 그리고 해가 바뀔 때마다 다시 한번 그 발효의 과정을 시작하며, 또 다른 계절의 기억을 쌓아간다. 장을 담근다는 것은 음식 하나를 만드는 일이 아니라, 삶을 조용히 재정비하고, 느리게 단단해지는 자신을 만나는 과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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